why?
족발 하면 왜 장충동일까?
봄내음다올
2016. 8. 11. 14:04
족발 하면 왜 장충동일까?
장충동에 족발집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1년 고향이 이북인 30대 두 여인이
'평안도집'이라는 족발집을 열면서 부터입니다.
당시 장충동 일대는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많이 정착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장충동에 족발집이 등장한지 2년이 지났을대 우리나리 실내스포츠의 메카인
'장충체육관'이 개관합니다.
복싱, 프로레슬링 같은 당시 최고의 스초츠 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열렸죠,
1966년 우리나라 북서로는 최초로 세계 챔피언이 된 김기수 선수가 경기를 펼쳐 곳도,
1967년 박치기왕 김일 선수가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이 된 곳도 장충체육관 입니다.
1970~80년대에는 씨름대회 농구대잔치, 배구대회 등이 모두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이 많은 스포츠 이벤트를 보러 구름같이 모여든 관중의 눈길과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족발이었습니다.
장충동은 도축장이 있던 마장동이 주변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습니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던 일본이 1970년대 들어 돼지고기 수입을 자유하자
한국산 돼지고기 수출이 굽속히 늘었는데요.
수출은 살코기 위주로 이뤄졌기 대문에 돼지머리와 다리,내장, 뼈등 부산물이 넘쳤습니다.
장충동 식당들은 이 족발을 싸게 가져다가 쫄깃한 질감과 부드러운 살코기가
조화를 이루는 별미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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