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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속리산국립공원 / 법주사 세조길

봄내음다올 2016. 12. 25. 16:28

 

속리산[법주사 세조길]

 

 

 

 

 

속리산 법주사 일원
법주사를 중심으로 속리산의 천왕봉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일대 18,590,000㎡를 말한다.
속리산은 해발 1.057m의 천왕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렀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 일원은 대한 8경 중의 하나로 제2금강 또는 소금강으로 불리는 4계절의
변화에 다른 경치와 기암, 기석은 절경을 이루고 있고, 대소 사찰이 곳곳에 있어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속리산의 대표 사찰인 법주사는 553년의 의신 조사기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와 산세 험준함을 보고 큰 절을 세워
법주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대규모로 중창하였으며, 고려시대를 거치며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으니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다. 조선 인조 2년에 사명대사 및 벽암 대사에 의해 다시 중건되고
보수 증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국내 유일의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을 비롯 쌍사자석들(국보 제5호). 석련지(국보 제64호). 사천왕 왕 석등
(보물 제15호). 대웅보전(보물 제915호)등 국보 3점, 보물 12점 천연기념물 1점, 도지정문화재 25점이 소장되어 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1966년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속리산은 명승으로, 법주사 주변지역은
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으며 산중에는 복천암, 탈골암 등 11개소의 전통사찰이 산재하고 잇다..

 

 

 

 

 

 

 

 

 

 

 

 

 

 

쌍사자 석등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선덕왕 19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가 3.3m로 넘따한 8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 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석등의 구조는 8각의 지대석에서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상 대석을 따로 조각하여 쌓아 올리지 않고
하나의 돌에 조각하였으며 다른 석등 돌에 비해 희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속리산"세조길"
법주사 삼거리 ~세심정:2.35km [코스 난이도★☆☆☆☆:편도 50분]

 

 

 

유래:세조길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요양차 스승인 신미대사가 있는
     복천암 순행 온 역사적 사실에 착안해 명명되었다.

 

 

 

 

 

세조와 피부병
조선의 7대왕이 었던 세조는 꿈속에서 자신이 왕위를 빼앗은 조카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 침을 뱉어서 생겨난 종기로 인해 심각한 피부명을 알고 있었다.

속리산에 머물던 세조는 달이 높이 뜬 달, 산책을 하던 도중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가 나타나 "산골의 한 계곡 주위에 커다란 바위와
소나무가 많고 마르지 않은 계곡이 존재하니 그곳에서 목욕을 하면 피부병
곧 완쾌될 것이다' 라고 말한 뒤 월광 태자는 사라졌다고 한다.

 

 

 

세조의 뉘우침
속리산 법주사는
약3000여명의 스님이 살았고
60여 채의 건물이 있었던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이곳은 법주사 전성기의 흔적이 남아 있던 곳이다.
세조가 속리산을 방문했을 당시 이곳에서 머물며
스님들과 담소를 나누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던
장소라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건물은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버려
현재는 건물 터만 남아 있다.

 

 

 

 

 

 

눈썹바위
세조가 바위 아래 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겼던 자리로, 속리산을 찾은 사람들
비바람과 한낮의 더위를 피하던 장소이다
생긴 모습이 마치 사람의 속눈썹을 닮았다. 하여 눈썹바위라고 불리고 있다.

 

 

 

 

 

 

 

 

 

 

 

 

 

세조의 숨겨진 딸
서희 공주
세조의 알려지지 않은 큰달, 세희 공주는
아버지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한양에서
도망치던 중 만난 나무꾼 총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죽인 김종서 장군의
손자임을 알게 되지만, 두 사람은 속리산에
숨어 살며 가정을 꾸리게 된다.
요양 차 속리산을 찾은 세조는 세희 공주를
우연희 발견해 함께 궁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나
세희 공주는 몰래 가족들과 떠나버린다.
이에 상심한 세조는 결국 사위를 위해
준비했던 벼슬을 마을 앞 커다란 나무에게
내리니, 이 나무가 바로( ) 소나무이다.

 

 

 

 

 

 

 

 

 

거북바위가 있는 수정봉
거북 바위는 당나라의 태종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 태종이 세수를
하려는데 대야에 커다란 거북의 그림자가 보였다고 합니다. 이에 놀란 태종이
한반도의 큰 거북 대문에 중국 때문에 중국의 재물과 인물들이 모이지 않고 기운이 한반도로
흘러가고 있다고 하여 그 거북을 찾다가 이 곳 수정봉에서 거북을 발견하여
목을 자르고, 등 위에는 탑을 세워 그 기운을 누르려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 목을 주위 붙이고 등 위에 세웠던 돌탑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숲 이주는 선물
속리산 국립공원은 자연환경이 잘 보전되어 있어
심신안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세조길 내 피톤 치도 발생량을 측정한 결과
산림청고시 '치유의 숲 타다 성 평가 조사
기준'의 최고 점수인 '3.0 ppt/일'을 초과한
3.73 ppt/일'로 조사되었으며, 음이온은
2.000개/㎤/일'을 초과한 '3,2900/㎤/일'로
조사되었다.
그예 날 요양차 이곳을 찾았던 조선 7대 왕
세조도 '피톤치드'와 '음이온'으로 인해 피부병
치료에 도움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세조의 사은 순행길
이 길은 노년의 세조가 지난날 왕위와 권력을 얻기 위해 저질렀던 모든 약행과 잘못에 대해
참회했던 스승인 신미대사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얻고 미래의 강국 조선을 꿈꾸고자
다짐했던 길이다.

※신미대사 :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세종의 명으로 석보상절 편찬 작업에 함께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당시 편찬된 책자들은 초기 한글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현재 복천암에
신미대사 부도탑이 있다.

 

 

 

 

 

 

 

 

 

 

목욕 소
조선 7대 왕 세조가 법주사에서 국운의 번창 기원을 위한 대법회를
연 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 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다" 하고 사라졌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
졌다 하여 목욕 소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