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단재 신채오 선생 생가지
대전광역시 기념일 제26호
이곳 도리미 마을은 단재 신채호 188~1936 선생이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여덟 살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신채호 선생은 열아홉 살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스물여섯 살에 성균관 박사로 되었고, 을사조약 후 일제의 식민 통치에 맞서
민족의식을 불어넣고자 민중 계봉 운동과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항일 비밀
단체인 신민회 사건에 연루되어 1910년에 블라디 토크로 망명하여 독립 활동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1928년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여순감옥에 수감되었다가 57세
되던 해인 1936년 2월 21일에 옥사하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홍보관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의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 갈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
'일본을 구축 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판철하고야 말 지리,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설 장절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 한 함정이요.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로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참절 장절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다.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이오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 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 민중이 한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이천만 민중은 일치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신채호, '조선혁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 주의에 감나무가 있네요.
새들이 이 겨울에 먹잇감이 없어 홍수로 먹고 있네요.
이러한 모습은 내 생의 처음이라 무척 신기했죠. 홍수가 얼었다 녹았다 했는데도
새들이 참 많이 모여 있어요. 사진으로 찍어 봤죠! 정신없이 찰칵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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