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해미면 남문 2로 143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2-2번지 일원
사적 116호 해미읍성(1963년 01월 21일 지정)
이 성은 고려말부터 많은 피해를 준 왜 구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도 병마도 절재 사영을 해미로 옮기 기를 하면서 1417년(조선 태종 17)부터 1421년(세종 3)까지 축성. 충청도의 전국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 영성이다
1652년(효종 3)년까지 230여 년간 병마 절도 사영의 기능을 하였으며 청주로 옮겨간 후 해미 현감이 이 성에 옮겨와 겸영장이 되면서 해미읍성이 되었다
호서 좌영으로 1895년 낮은 산과 평지를 이용하여 쌓은 평산 성으로 성곽의 하단은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였는데 안쪽은 흙으로 채웠다
성문은 동, 서, 남세 곳에만 있고 북에는 암문이 있다 주 출입구인 진남문은 다듬어진 돌로 된 아치형 홍예문이다 성밖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 해자의 일부를 복원해 놓았으며 기록에는 성벽 위에 여장과 웅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성곽 둘레는 1800m 높이는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가 심어져 탱자의 한자음을 취한 개성이라고 한다
이 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짐 무하던, 동헌을 비롯한 관아와 객사 등의 건물이 꽉 들어차 장관이었다고 한다
1578년 (선조 11)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으며 조선시대 말기 천주교 박해다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손자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참 행복한 순간(포착)
문화재 명치:해미읍성 회화나무
지정 별:기념물 제172호
학명:회화수(낙엽교목)
충청도 사투리:호야나무(이 나무의 고유 이름처럼 불림
수령:300년 이상으로 추정
약력:1790~1880년 대에 이곳 옥사에게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 있던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으며 철사줄이 박혀 있던 흔적이 현제까지로 희미하게 남아있고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1940년에 가운데 줄기는 1969년 6월 26일에 폭풍으로 부러져 외과수술을 시항 하였으나 제차 부패되어 2004년 4월에 외과수술 및 토양개량 등을 거쳐 보호 관리되고 있음
옥사 전경
옥사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의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교도들을 투옥하고 문효 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 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 뒤 목원 재현되었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진 약사"의 기록을 건물도 남녀의 옥사가 구문 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 법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물
민속가옥
조선시대 민가로 부농의 집을 재현하였다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민가로 대청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ㄱ자형의 가옥은 ㅡ자형 가옥의 기본 평면에서 발전된 것으로 부엌 1칸 방 1칸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의 형태로 필요에 따라 칸이 덧 붙여져 학대된 것이다
이 가옥은 부유한 농가로 각종 농기구와 농사물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부옥채가 딸려 있는데 부 속 건물을 마당 한쪽에 치우쳐지어 농경 작업을 위한 마당의 공간 활용을 높였다
민속가옥
조선시대 민가로 말단관리인 서리의 집이다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진 적형적인 서산의 3칸 초가집이다 ㅡ자형의 평면구성은
우리나라 농촌 민가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 되는 공간배치로서 부엌과 방들이 일렬로 연속 배치되어 있다 모든 방이 남쪽으로 출입구를 두어 쾌적한 생활공간 이 되도록 하고 있다
방에 갖춘 간단한 문구류가 집주인의 직업을 말해준다
민속가옥
조선시대 민가로 상인의 집은 재현하였다 대들보 아래의 방은 일렬로 배치한 홑집 즉 단일형 가옥으로 우리나라 서부와 남부 널리 분포되어 있는 조선 후기 민가의 보편적 형태이다
이 지역 민들을 일반적으로 몸채를 ㅡ자형으로 하고 광, 외양간 측간등를 하나로 묽어 부속채를 기성 한다 이 가옥 역시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 전형적인 3칸 호가이며 부속채가 딸려 있다 장사가 주입이지만 텃밥 중작을 위한 기본적인 농기구를 갖추고 있다
잠 야루
해자
해지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만든 것으로 과거에는 읍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현재 읍성 북쪽에 석촉해자를 복원하였다
자연생태공원
해미읍성 장승 동상
해미읍성 1417년부터 1421년까지 축 성권 성곽으로 충청도의 군사권을 관창 했던 충청 병마 절도의 사영이 설치된 곳이며 그 당시 쌓았던 성벽은 지금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수령 100,200년 이상의 소나무가 피해를 입었으며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해미읍 성괴 역사를 함께한 소나무를 의미 있게 활용하고자 장승들은 대통령의 근엄한 그 당시 국정 지표를 장승에 새겨 역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외에 토속 해학적인 장승들을 만들어 그 의미를 더 했다
내아
동현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방관과 그의 가족들이 거주하던 생활 초소이다
해미읍성 객사
객사는 건물의 중앙 정청에 궐자가 새겨진 위패를 모시고 살며(매월 초하루 보름)에 관아의 대소 관원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으며 양편 익실은 조정이나 상부에서 파견된 관원 및 귀빈들이 숙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다 해미읍성객사는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1999년 7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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